[기자수첩] 한국 주짓수, 더 많이 깨져야 큰다
브라질리언 주짓수는 현재 전 세계에서 수련하고 있는 '호신' 스포츠다. 선 상황에서 상대를 메치고, 그라운드에서는 조르기와 꺾기로 항복을 받아내는 실전 무술이기도 하다. 직접적으로 상대방을 가격하는 것이 없기에 여성과 어린이들에게도 안전한 무술로 인기가 높다.

지난 21일. 1964년 도쿄 올림픽으로 유서 깊은 일본 코마자와 올림픽 공원 종합체육관에서 '아부다비 컴뱃 클럽(ADCC) 서브미션 레슬링 월드 챔피언십(이하 ADCC)' 아시아 예선이 열렸다.

ADCC는 2년 마다 한 번씩 열리는 세계 최대 규모의 대회로 1998년 첫 시작을 알린 '그래플링 올림픽'이다. 2년마다 한 번씩 열리며, 이 분야에서는 주짓수 대회인 '문디알'과 함께 그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역대 챔피언들의 이름만 봐도 쟁쟁하다. 마크 커, 히카르도 아로나, 호저 그레이시, 파브리시오 베우둠 등 종합격투기에서도 두각을 나타내는 선수들이 많다. 일본인으로는 키쿠다 사나에가 2001년 -88kg급에서 우승을 하기도 했다.

21일 일본에서 열린 대회는 새롭게 신설된 ADCC '기(GI)' 부분의 아시아 예선으로, 체급별 우승자들은 2011년 열리는 ADCC 본선에 출전할 자격을 얻는다. 이를테면 월드컵 지역 예선과 같다.

한국에서는 국내 정상급 그래플러 9명이 출사표를 던져 전원 탈락했다. 한 경기 당 6분, 체급별로 적게는 8강, 많게는 64강까지 치러졌기 때문에 일부 체급에서는 휴식시간이 채 15분도 되지 않는 살인적인 일정을 감내해야 했다. 게다가 출전 선수 대부분은 일본 자체 예선을 뚫고 올라왔기 때문에 실력 또한 만만치 않았다.

이번 대회에 출전한 선수들은 파란띠 3명(박진호, 이용우, 김동규), 갈색띠 1명(이형걸), 보라띠 5명(황인석, 이희태, 전두광, 이형근, 김홍석)으로, 이미 국내 예선을 통과한 쟁쟁한 실력자들이었다. 그러나 박진호가 3승, 이형걸과 김홍석, 김동규가 1승을 한 것 외에는 모두 첫 경기에서 패했다.

결론적으로 수준 차이가 있었다. 경기장은 도쿄인지 상파울로인지 분간하기 힘들 정도로 브라질 선수들이 많았다. 특히 거구의 브라질 선수들은 빠르고 유연한 기술로 다른 선수들을 압도했다. 일본 선수들의 기술도 상당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대회에 동행한 이희성 관장은 "이번 대회 우승자들도 본선에서는 대부분 1회전에서 탈락하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세계의 수준은 상상하는 그 이상이다"라고 말했다.

한국에 주짓수가 전파된 것은 1990년대 후반이다. 10년의 역사 속에 순수 한국인 블랙벨트는 박준영 관장, 이희성 관장 등 손에 꼽을 정도. 20세기 초반 브라질에서 주짓수가 시작된 것과 비교하면 역사적으로는 100년 가까이 차이가 난다. 때문에 수준차이가 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한국 주짓수의 수준은 매년 해가 다르게 성장하고 있다. '세계의 벽'에 앞서 '아시아의 벽'도 높은 상황이지만, 성장 곡선은 그 어떤 스포츠보다 가파른 각도를 유지하고 있다.

비슷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종합격투기를 보면 한국 주짓수의 성장세를 이해할 수 있다. 불과 5년 전 한국 종합격투기의 상황은 절망적이었다. 일본 대회에 10명이 가서 1명이 이길까 말까한 수준이었다. 이미 일본 종합격투기는 한국보다 10년 이상 먼저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여전히 일본 종합격투기의 전체적인 수준과 인프라는 한국보다 높지만, 김동현이나 정찬성 등 미국 메이저 대회에 진출한 선수들을 배출했을 정도로 수준이 높아졌다. 물론 그 과정 안에는 숱하게 해외 무대를 두드리면서 깨지고, 터지고, 꺾였던 고통이 있었다.

현재 한국 주짓수는 세계에서도 '변방'에 속한다. '국내 1위'를 추켜세울 때는 이제 지났다. 인터넷 상에서 모든 것이 증명되는 세상에 집안 1등 싸움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더 많이 부딪치고, 더 많이 져 봐야 한다. 파벌과 분파 싸움으로 시간을 낭비하기보다는 한 번이라도 더 한계에 부딪치면서 그 벽을 깨부수고 나가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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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훈 기자(ozzman82@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