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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9-10-16 01:34

[김대환의 UFC 다시보기①] 최강의 가문 '그레이시 주짓수'

글쓴이 : 소재현

종합격투계의 시발점이자 현재 미국 최고의 격투 이벤트 UFC! IFC, UFC 해설가 김대환이 전하는 'UFC 명장면 명승부'를 통해 화면으로 못다한 UFC의 숨겨진 비화와 역사를 전한다.

아마와 프로를 통틀어 요즘 격투 스포츠 계에서 가장 뜨는 분야를 꼽는다면? 두말할 필요 없이 MMA(종합격투기)다. 무한한 잠재성과 독특한 매력을 갖고 있는 이 새로운 격투기는 현재 세계 최고 규모의 흥행시장을 자랑하는 일본을 필두로 세계 각지에서 다양한 형태로 펼쳐지고 있는데, 이 MMA의 출발점이 바로 최초의 이종격투전을 표방하며 미국 전역을 충격으로 몰아넣었던 Ultimate Fighting Championship 대회라는 데 이견을 제시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10년이 조금 넘는 현대 MMA의 짧은 역사에서 UFC가 차지하고 있는 의미는 굉장히 크다. 특히 초창기 시절에는 UFC의 역사가 곧 MMA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지난 13년간 70회에 가까운 이벤트 속에서 수많은 명장면과 스토리를 양산해온 UFC, 앞으로 이 유서 깊은 '원조 MMA 대회'의 박진감 넘치는 명승부들을 중심으로 흥미진진한 에피소드 및 선수 소개 등 전반적인 부분들을 폭넓게 소개해 나가도록 하겠다. 그렇다면 이 UFC는 누가 과연 어떻게 만들어서 처음 시작했던 것일까? UFC의 출발에 대해 알아본다.

최강의 가문 Gracie

UFC의 초반 역사를 돌이켜 볼 때 그레이시 가문을 빼놓고는 그 어떤 얘기도 풀어나갈 수 없다. 초창기 UFC는 그레이시 가문과 주짓수를 세상에 널리 알리기 위한 그레이시 가문만의 잔치에 지나지 않았다고 비판하는 혹자들도 있을 정도로 이 둘의 관계는 밀접하기 그지없다. 그레이시 가문은 말 그대로 Graice란 성을 쓰는 스코틀랜드 출신의 일가로, 1940년대 이후 일본의 유술을 실전적으로 개량한 독특한 가문의 무술-그레이시 주짓수-를 선보이며 브라질 전역의 이종격투대회들을 휩쓸다시피 했다.

주짓수를 실전적으로 개량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엘리오 그레이시는 일본 유도의 영웅 기무라 마사히코와 그 제자들과의 싸움을 비롯한 수많은 타류 격투가들과의 대결에서 대부분 승리를 거두며 가문의 이름을 널리 떨쳤고, 1957년 그가 은퇴한 이후엔 조카 칼슨 그레이시가 바통을 이어받아 맹활약을 펼쳤다. 하지만 1970년대 들어 브라질 리오에서 발리투도 대회가 금지되고, 때마침 세계를 강타한 브루스 리 열풍 등 여러 악재를 만나며 그레이시 유술은 점차 뒷전으로 밀려나게 된다. 자신들의 무술이 최강임을 증명하기 위해 그레이시 파이터들은 타류 무술가들에의 도전, 일명 '도장깨기'를 계속하며 승리를 이어갔지만, 일반인들은 이미 브루스 리가 영화에서 보여준 일격필살의 타격기에 깊이 매료되어 있었다. 세계 최강의 가문은 현실에서의 강력한 적들은 다 이겨놓고, 난데없이 스크린에서 나타낸 허상의 적에게 보기 좋게 넉 아웃되었던 것이다.

Gracie집안의 야심가, 호리온

이런 힘든 와중에서도, 요즘 말로 하면 대박의 꿈을 버리지 않은 사나이가 가문에 한 명 있었는데 그가 바로 엘리오의 큰아들 호리온 그레이시였다. 소싯적부터 '아메리칸 드림'을 가슴에 품고 있었던 호리온은 열일곱 살 때 비행기 티켓을 분실해 미국에서 노숙을 하며 지낸 경험도 갖고 있었다.

1978년, 그는 주짓수를 세계에 널리 보급시켜 부와 명예를 동시에 거머쥐겠다는 자신의 꿈을 실천에 옮기기로 결심하고 다시 미국행 비행기에 오른다. 쉽지 않은 길이었지만, 호리온은 허름한 창고에서 수련생들을 가르치고 타 무술유파들과의 활발한 교류(?)에서 손쉽게 승리를 쌓으며 주짓수의 존재를 조금씩 알려 나간다.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호리온에게 기회가 다가온다. 그의 기사가 미국 최고의 무술잡지인 'Blackbelt' 잡지, 그리고 미국 전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기 잡지 중 하나인 'Playboy' 지에 실리게 된 것이다. '10만 달러를 걸고 싸워서 이기면 승자가 다 가지기로 하고 싸워봅시다!'라는 문구와 함께.

기사가 실린 이후,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는 입관문의와 도전장을 처리하느라 갑자기 바빠진 호리온에게 광고 전문가 아트 데이브가 나타나며 UFC의 탄생은 새로운 전기를 맞는다. 호리온의 도장에 찾아온 가라데 선수들과의 대결에서, 호리온의 동생 호일러 그레이시가 자신보다 훨씬 큰 거한들을 갖고 놀다시피 하다 초크로 보내버리는 걸 직접 본 데이브는 완전히 주짓수에 매료되게 되고, 마침 거기서 역시 입벌리고 구경하던 헐리우드 액션영화 제작자 존 밀리어스와 만나 의기투합, 호리온에게 접근한다. 그동안 이런 엔터테인먼트 전문가들과의 융합을 꿈꿔왔던 호리온 그레이시가 이 둘과의 만남을 마다할 리 없었다, 이렇게 해서 삼국지의 도원결의에 맞먹는 결속식을 마친 이 세 열혈남아들은 본격적으로 '가장 개방적인 형태의 격투이벤트' 준비에 착수한다.

UFC를 향한 한걸음 한걸음

호리온과 데이브는 SEG사 측에 상금 10만 달러에 16인 토너먼트로 이벤트를 개최하자는 호기로운 제안을 내놓지만, 논의를 거친 후 재정적 문제 등을 고려해 상금 5만 달러가 걸린 8인 토너먼트로 최종 결정된다.

선수들이 경기를 펼치는 링을 어떤 모양으로 할 것인가도 고민이었다. 복싱이나 킥복싱에 쓰는 로프가 달린 평범한 사각의 링은 모두 반대했기에 오랜 동안 토의를 했지만, 아트 데이브가 링 주위에 악어를 풀어놓자는 황당한 발언을 하는 등 답이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자 결국 전문 디자이너 제이슨 커슨을 고용, 마침내 높이 5피트 10인치에 직경 30피트의 케이지, '옥타곤'이 탄생한다. 누구도 뛰어들지 않았던 새로운 일이었기에 예상치 못했던 어려움이 많았지만 셋은 하나씩 차근차근 풀어나갔다.

당시 전체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던 Pay Per View 회사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그들의 야심찬 계획을 거들떠보지도 않아 첫 번째 고비에 부닥치지만, 작지만 패기 넘치는 젊은 회사 SEG와 계약에 성공하며 다시 한 번 대회 개최에 큰 걸음을 하나 내딛는다.

최강의 파이터

이제 남은 일은 이 옥타곤에서 싸울 8명의 파이터를 결정하는 것이었다. 그레이시 가문의 파이터를 우선 한 명 뽑아야 했는데, 가장 먼저 거론된 후보는 가문 최강의 파이터이자 호리온의 동생인 힉슨 그레이시였다.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결국 호리온의 또 다른 동생 호이스 그레이시가 출전하기로 했는데 이 과정에 대해선 아직까지도 의견이 분분하다. 힉슨이 호이스에게 영광의 기회를 양보했다는 설, 주짓수의 효용성을 극대화시켜 보여주기 위해 호리온이 상대적으로 빈약한 체격을 가진 호이스를 선택했다는 설, 힉슨이 부업으로 주짓수를 가르치다가 호리온과 트러블을 빚어 일본 SHOOTO의 VALE TUDO JAPAN 대회에 참가를 독단적으로 결정하고 떠나버렸다는 설 등 여러 뒷이야기들이 나돌고 있다.

어쨌든 분명한 사실은 다들 동생들이긴 하지만 이미 브라질 발리투도 대회 경험도 다수 갖고 있었고 가문 내에서도 최강으로 인정받았던 힉슨보다는, 17세 때 호리온의 부름을 받아 미국에 와서 그의 도장을 충실히 지켜온 호이스가 호리온에게는 훨씬 충성스럽고 다루기 쉬운 존재였다는 것이다.

그레이시 가문의 파이터, 즉 '주연 배우'의 결정에 이어 나머지 7명의 '조연'들의 윤곽도 속속 들어나기 시작했다. 당초 기대했던 복싱, 스모, K-1 등의 탑 클래스 선수들은 파이트머니가 맞지 않아 데려오지 못했으나, 그보다 가격은 싸지만 명성과 개성은 뒤지지 않는 혈기왕성한 파이터들이 몰려들어 대진표를 꽉 채웠다. 가라데 챔피언 출신이자 이미 일본에서 이름을 날리고 있었던 네덜란드 격투가 제랄드 고르듀, 스모계의 반항아 텔리아 툴리, 킥복싱 수퍼헤비급 챔피언 출신의 케빈 로지어, 호리온 그레이시가 직접 추천한 난폭한 가라데가 제인 프레이저, 당시 WBC 크루저급 랭킹 10위에 올라있었으며 'Hitman' 토머스 헌즈와의 대결을 앞두고 있었던 복서 아트 짐머슨, 불량한 외모의 킥복서 패트릭 스미스 등 참가자들은 나름대로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는 강력한 파이터들이었다.

하지만 결국 이들보다 훨씬 큰 주목을 받게 되고 이후 MMA의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되는 두 명의 'Living Legend'가 이 토너먼트에 있다는 사실은 당시엔 그리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현재까지도 숙명의 라이벌로 평가받는 이 두 남자, 그레이시 가문의 대표 호이스 그레이시와 일본 정통 서브미션 레슬링 단체 판크라스의 선봉장 켄 섐락은 결국 이 첫 UFC 대회에서 그 치열한 싸움의 서막을 올리게 된다…

<2편에계속...>

[믿을 수 있는 격투기 뉴스, 신세기 격투스포츠의 길라잡이]
격투기 전문해설위원 김대환(polarbear@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