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격투기에서 2005년과 2006년은 경량급이 빛을 본 해였다. 헤비급의 파괴력만이 환영받던 격투기 무대에서 파괴력과 스피드, 기술을 함께 갖춘 경량급 파이터들이 본격적으로 활약하며 팬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이다.

2005년과 2006년의 경량급 붐의 중심엔 일본의 단체들이 서있었다. 프라이드 무사도 시리즈에서 펼쳐졌던 라이트급(-73kg) 그랑프리와 함께 K-1 히어로즈의 미들급(-70kg)의 토너먼트는 전세계 최고의 경량급 파이터들이 치러냈던 한 판 축제였다.

하지만 올해 초 프라이드가 UFC의 주관사 주파(Zuffa)의 밑으로 들어가고 히어로즈의 미들급 경쟁구도도 약간은 뻔해진 지금, 종합격투기의 원조 UFC에서 경량급 파이터들이 제 2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UFC에서 가장 가벼운 체급인 라이트급의 한계 체중은 -70kg, 프라이드의 라이트급보다 3kg가 덜 나가며 K-1 히어로즈의 미들급과 똑같다.

고미 타카노리가 프라이드를 통해서, 야마모토 노리후미가 K-1 히어로즈를 통해 스타로 떠올랐다면 UFC에서는 비제이 펜, 젠스 펄버와 같은 전통의 강호가 버티고 서있다. 또한 뛸 곳을 찾지 못해 상위체급에서 활약했던 강자들이 속속들이 라이트급으로 원대복귀하며 UFC 라이트급은 프라이드, K-1 히어로즈에 못지않은 탄탄한 선수층을 가지게 됐다. 'UFC 라이급의 맹자' 1회에서는 '천재'라는 말로 수식이 가능한 비제이 펜(28, 미국)을 소개해본다.

UFC 라이트급 초창기부터 활약했던 비제이 펜은 한국인의 피가 흐르고 있는 것으로도 국내에 널리 알려져 있다. 하와이에서 태어난 외할아버지 신손영씨가 현지인과 결혼을 했으며, 어머니는 독일계 미국인과 결혼해 비제이 펜을 낳았다.

비제이 펜은 주짓수에서 검은 띠를 보유하고 있는데, 여타 주짓수 출신 파이터들이 주짓수에 의존해 경기를 풀어가는 것에 반해 비제이 펜은 수준급 타격실력을 갖췄으며 레슬링에도 능하다.

비제이 펜은 '천재'라는 칭호가 아깝지 않은 기량을 보유하고 있다. 주짓수를 수련한지 4년만에 검은 띠를 따낸 것을 시작해 비(非)브라질인 최초로 세계주짓수선수권대회인 '문디알'에서 검은 띠 부문 우승을 거머쥐었다.

뿐만 아니라 본래 UFC에선 -70kg급에서 활약함에도 불구하고 -78kg급에 도전해 챔피언 벨트를 차지한 적도 있다. 2004년 1월 비제이 펜은 당시 13연승을 달리고 있던 맷 휴즈를 가볍게 꺾으며 웰터급 챔피언에 올랐다. 2002년 11월의 라이트급 타이틀전에선 젠스 펄버에게 2-1 판정으로 패배, 2003년 2월 라이트급 챔피언 결정전에선 카오루 우노와 비기면서 타이틀 획득에 실패했던 비제이 펜이 상위체급에서 타이틀을 따내며 챔피언의 꿈을 이루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비제이 펜의 파이터 인생이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UFC 웰터급 챔피언이 된 비제이 펜은 K-1 히어로즈의 전신(全身), 'K-1 ROMANEX'에서 출전을 제의받고 경기에 나서지만 이것이 족쇄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UFC측에서 자신들과의 사전동의 없이 K-1과 계약을 했다는 이유로 웰터급 타이틀을 박탈하고 UFC 선수명단에서 제명해버린 것이다. 비제이 펜은 이에 소송까지 걸며 저항했지만 법정에서는 UFC의 손을 들어줬다.

이후 ROTR, K-1을 전전하며 활동을 이어가던 비제이 펜은 2006년 4월 UFC로 돌아온다. 상대는 조르쥬 생 피에르, 캐나다 출신의 떠오르는 신예였다. 이 경기에서 비제이 펜은 2-1 판정으로 패했다. 타이틀도전권이 걸린 경기에서 패하고만 비제이 펜은 고개를 숙이고 옥타곤을 빠져나가야 했다.

비제이 펜에겐 한 번 더 기회가 찾아온다. 훈련 중 부상을 입은 조르쥬 생 피에르를 대신해 비제이 펜이 타이틀전에 나서게 된 것이다. 비제이 펜이 UFC를 떠나있는 동안 맷 휴즈는 다시 웰터급 챔피언에 올라있었다.

이미 한 차례 맷 휴즈를 꺾은 바 있는 비제이 펜은 자신만만하게 경기에 임했으나 이번에도 행운의 여신은 비제이 펜의 편이 아니었다. 2라운드 막바지 맷 휴즈의 등 뒤에서 서브미션을 노리며 힘을 쓰던 도중 갈비뼈가 부러진 것이었다. 숨을 쉬는 것조차 힘겨웠던 비제이 펜은 맷 휴즈에게 무기력하게 얻어맞다가 TKO로 패하고 만다.

그 뒤 비제이 펜은 재활훈련에 들어갔고 원래 체급인 라이트급으로 복귀할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비제이 펜의 라이트급 복귀전은 오는 6월 열리는 'TUF(The Ultimate Fighter) Season 5 Finale'에서 열린다. 상대는 과거 한 차례 자신에게 패배를 안겨줬던 UFC의 초대 라이트급 챔피언 젠스 펄버다.

2연패를 맛본 후 부활을 준비하고 있는 '천재' 비제이 펜, 그가 6월 '前 챔피언간 대결'에서 승리를 거두면 곧바로 타이틀 도전자로 낙점받을 수도 있다. 항상 외치던 바와 같이 UFC 3체급 제패를 목표로 다시 움직일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는 셈이다.

비제이 펜이 빠진 이후 무주공산이 돼버렸던 UFC 라이트급이었지만 최근 션 셔크가 챔피언에 오르며 재가동을 시작했다. 돌아온 '천재' 비제이 펜이 라이트급에서 어떤 활약을 펼칠 수 있을지 팬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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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정 기자(riskest@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