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블루드래곤
 
 
 
 
 
 
 
공지사항
체험기
묻고답하기
관원게시판
기술강좌
동영상
사진갤러리
주짓수뉴스
페이스북
 
 
 
작성일 : 11-04-04 19:37
블랙벨트 김진철 "주짓수는 내 인생의 전환점"
 글쓴이 : 최고관리자
조회 : 7,498  

2010년은 한국 브라질리언주짓수에 매우 의미 있는 한 해였다. 주짓수가 도입된 지 약 10년이 흘렀고, 블랙벨트를 따기까지 보통 10년이 걸린다는 속설에 걸맞게 2000년 초에 수련을 시작한 1세대 주짓떼로들이 속속히 승급하는 경사를 맞았다.

지난해 블랙벨트에 승급한 1세대 주짓떼로 중 대표적인 인물이 김진철(43, 부천 블루드래곤 주짓수 아카데미)이다. 과거 태권도와 합기도를 수련, 태권도 체육관을 운영했던 김진철은 말로만 듣던 주짓수를 국내에서 접할 기회가 생기자 곧바로 달려갔다. 그리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주짓수에 전념하며 국내 주짓수의 대들보로 성장했다.

블루드래곤 관장, 한국브라질리언주짓수연합회 이사, 아부바디 주짓수 코리아 전무 등 주짓수계 다방면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김진철은 "이제부터가 다시 시작이다"라는 마음으로 앞장서서 발로 뛰고 있다.

최근에는 국제대회에 꾸준히 출전하며 팬암선수권 3위, 힉슨컵주짓수 대회 정상에 오르는 등 적지않은 나이임에도 후배 선수들에게 본을 보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주짓수를 접하게 된 계기, 블랙벨트를 받기까지의 과정, 국내 주짓수의 현 상황에 대해 김진철과 다양한 대화를 나눴다.

이하는 김진철 인터뷰.

- 격투스포츠를 어떻게 접하게 됐는가?
▲ 7살 때부터 태권도를 배웠다. 옛날 태권도는 가라데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정권단련대를 치고 격파하는 등 주먹과 발을 단련하는 분위기가 강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강한 운동이었다. 하지만 스포츠화 되면서 수련방법이 바뀌었다. 이후에는 합기도를 배우기도 했다.

- 직장생활도 했다고 들었는데.
▲ 사범생활을 했는데, 사범 월급으로는 타산이 맞지 않았다. 직장생활을 하고 장사도 하다가 29살 때 부천에 태권도 체육관을 열었다. 8년 정도 했던 것 같다. 오픈한지 3년 정도 됐을 땐 관원이 150명 정도 됐다. 그러나 주짓수를 알게 된 이후 점차 소홀했다. 그래도 태권도가 금전적인 이득을 취하기엔 좋은 운동이었기에 주짓수 체육관과 한동안 병행했다. 그렇게 8년 정도 이끌어오다가 이젠 주짓수에 전념하고 있다.

- 주짓수와의 인연은 어떻게 맺게 됐는가?
▲ 다른 관장들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UFC, 앱솔루트 파이팅 같은 격투기를 접한 것이 계기가 됐다. 그러면서 동호회도 기웃거리고, 다른 유파의 주짓수를 배우기도 했다. 그렇게 조금씩 접하다가 국내에 카를로스 레모스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 곧바로 달려갔다. 달려간 날부터 3개월간 매일 레모스가 진행하는 수업에 참여했다. 당시 2~3시간 세미나를 듣는데, 30~40만원 했던 것 같다. 돈을 많이 썼지만 주짓수의 기초를 배울 수 있었다. 이후 마르코스 바로스, 오시말 코스타에게 배우면서 실력을 키워나갔다.

- 주짓수를 배우기엔 나이가 많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나?
▲ 너무 재미있어서 항상 즐거움 속에 운동을 했다. 그러다 보니 나이에 대한 문제점도 없었고, 힘든 줄도 몰랐다.

- 당시의 국내 주짓수를 돌이켜 보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 많이 미흡했지만 1세대들의 열정은 지금 이상이었다. 부족한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부족함없이 가르치기 위해 노력을 많이 했다. 외국처럼 한 스승이 꾸준히 지도할 여건이 되지 못했고, 유학을 가더라도 1~2년씩 배우고 오는 사람은 없었다. 기술도 지금처럼 방대하지 않았다. 그때의 어려운 시절은 발전하기 위한 과정이었다.

- 주짓수에 전념해야겠다고 결심한 계기가 있었나?
▲ 레모스에게 제대로 배울 때부터 끝까지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주짓수는 매우 쇼킹하게 다가왔다. 그때 먹은 마음이 지금까지 이어진 것 같다. 주짓수를 접한 것은 내 인생의 전환점이다. 이런저런 운동을 많이 했지만, 주짓수처럼 충격적이진 않았다. 모든 1세대들의 한결 같은 생각일 것이다.

- 중간에 전환점은 없었나?
▲ 다들 알겠지만 중간에 종합격투기 선수를 양성했다. 2등은 해봤지만 챔피언은 못 배출했다. 그런 아쉬움 속에 있다가 마흔이 넘으면서 주짓수 전문체육관을 열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멀쩡한 차까지 팔아가며 힘들게 주짓수 전문 체육관을 열었다. 그것이 가장 큰 전환점인 것 같다. 최근에 팬암선수권을 비롯해 여러 대회에 출전하며 다시 시작하는 느낌을 받는다. 이전에는 중심없이 흘러왔다면 경기를 통해 공부가 많이 됐다. 지금이 다시 시작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 주짓수를 처음 접했을 때의 기분을 기억하나?
▲ 주짓수의 매력은 다들 공감하는 것처럼 실전성에 있다. '난 서서 싸우는데 유도가를 만나면 어쩌지?'라는 불안감을 주짓수를 통해 잠식시킬 수 있었다. 늦은 나이에 시작했지만 어렸을 때 많은 무술을 배웠기 때문에 큰 어려움이 없었다. 이전에 배웠던 무술에 대한 실망감은 없다.

- 주짓수의 매력은 뭔가?
▲ 끊임없는 자기수양이다. 주짓수의 배움은 끝이 없다.

- 과거 초창기 시절 재미있는 애피소드는 없었나?
▲ 처음 체육관을 열었을 때 정심관과 이희성주짓수아카데미가 있었다. 나는 저녁 8시까지 3층에서 태권도를 가르쳤고, 8시 이후엔 지하체육관에서 주짓수를 가르쳤다. 당시에는 주짓수를 설명하는 문구가 '최강의 무술'이었다. 그런 문구가 인터넷에 많이 떠돌며 체육관에 도전하러 오는 경우가 잦았다. 한 번은 차량운행을 끝내고 체육관에 왔는데, 어떤 사내가 킥복싱 팬츠를 입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스파링을 제의했다. 결국 스파링을 했고, 기무라로 상대의 어깨를 탈골시켰다. 원래는 탭을 칠 시간을 주는데, 그 스파링은 실전적인 느낌이 강했다. 내가 지면 주짓수가 지는 격이었으니까. 결국 그 사내는 옷을 갈아입지도 못하고 병원으로 향했다. 당시엔 킥복싱, 복싱, 유도 등의 운동을 배운 사람으로부터 도전을 많이 받았다. 때문에 항상 준비가 되어 있어야만 했고, 새벽까지 운동을 하기도 했다. 내가 지면 도장문을 닫아야 하는 분위기라고 할까. 그런 분위기가 있었기에 더 치열하게 운동할 수 있었다.

- 한 때 MMA에 집중했던 이유가 뭔가?
▲ 주짓수를 하면서 국내에 네오파이트, 스피릿MC 등의 격투기 단체가 생겼다. 남자로서, 지도자로서 챔피언 제자를 양성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물론 격투기를 좋아한 이유도 있었다. 종합격투기를 통해서 주짓수를 더 배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땐 종합격투기를 체계적으로 가르친 사람이 없었다. 킥복싱 스타일, 복싱 스타일 등 이런 저런 방법으로 출전시키며 종합격투기를 완성해나갔다. 미트를 너무 많이 잡아 어깨 인대를 다쳐 지금은 미트를 잡을 수 없다.

- 주짓수에 소홀하진 않았나?
▲ 기반 자체가 주짓수를 위한 종합격투기였지 종합격투기를 위한 주짓수는 아니었다. 제자들의 승률도 80%가 서브미션이었다. 물론 타격도 했지만, 타격은 그라운드로 가기 위한 수단이었다. 타격에 큰 목적은 없었다.

- 한 때 종합격투기에 전념했던 게 본인 이력의 흠이라고 생각되진 않나?
▲ 당시 도복 주짓수 경기에 나가서 좋은 성적을 많이 거두는 등 절대 주짓수를 소홀히하지 않았다. 주짓수 기술에 대해서도 꾸준히 연구했다.

- 다시 주짓수에 전념하게 된 이유는?
▲ 우선 몸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았다. 그런 찰나에 대회사가 사라지며 방향을 잃었다.

- 국내에 주짓수가 도입된지 어느덧 10년이 흘렀다. 현재 한국 주짓수를 어떻게 보는가?
▲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볼지 모르겠지만 난 잘 성장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연합회의 경우 오랜기간 지속적이고 꾸준히 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그렇게 유지가 된다는 것은 그만큼 선수 실력이 향상되고 인구가 늘어나는 등 발전하고 있는 증거다. 그런 기반을 통해 월드 프로페셔널 주짓수컵 예선도 열 수 있었다. 이젠 외국에 나가서도 경쟁력이 있다. 꾸준함이 빛을 발하고 있다.

- 주짓수의 생명은 정통성이라고 하는데, 국내 1세대들 중에 떳떳한 길을 걸은 이는 사실상 드물다.
▲ 우리 1세대들은 국내에 주짓수 본연의 틀을 만들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했다. 1세대 관장들이 걸어온 길은 국내에 주짓수란 운동이 기반을 잡기 위한 과정이었다. 결코 나쁘게 보지 않는다. 다들 성장하기 위해 고생을 많이 했다. 그냥 블랙벨트가 된 게 아니다. 물질적인 투자와 노력, 정신적으로 많은 헌신이 있었다. 1세대가 있었기에 지금 세대들이 정통라인을 타고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다.

- 과거 본인이 배울 때와 지금은 어떤 차이가 있는가?
▲ 열정에서 차이가 있다. 그땐 정말 절실했다. 지금은 체육관에 나오기만 하면 매일 다른 기술을 배울 수 있다. 브라질,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던 1세대들은 다 넉넉해서 간 것이 아니다. 열정 하나로 주짓수에 모든 것을 걸겠다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 현재 한국 주짓수의 수준은?
▲ 블루벨트, 퍼플벨트의 경량급은 세계수준에 근접해있다고 본다. 그것은 국제 경기에서 증명이 되고 있다. 하지만 아직은 선수층이 너무 얇다. 시간이 지나면 브라운벨트, 블랙벨트에서도 입상하는 일이 많아질 것이다.

- 한국 주짓수가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 단체 차원에서 대중화를 시킬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지금 주짓수에 몸담고 있는 사람도 중요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주짓수를 접할 수 있도록 해야만 한다. 연합회의 경우 방송중계를 준비하고 있다. 이미 여건은 마련된 상태다. 그것이 실행되면 전국 관장들이 지금보다 더 편하게 체육관을 운영할 수 있을 것이다. 알리는 게 가장 중요하다. 협회만 잘 먹고 잘 살겠다는 마인드는 바람직하지 않다.

- 국내 주짓수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은 누구라고 보는가?
▲ 국내에 주짓수를 전파하고 처음으로 전문체육관을 연 분들이 계시지만 큰 의미를 두고 싶진 않다. 그런 분들이 아니더라도 주짓수는 어차피 한국에 뿌리내려졌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일선 관장들 모두가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다들 열정을 갖고 노력한 사람들로 존경을 받아 마땅하다. 자기만족이 강한 운동이지만 한편으론 힘들고 고독한 운동이다. 지도자들은 그런 것들을 다 인내하고 노력했다.

- 지난해 블랙벨트에 승급했다. 기분이 어땠나?
▲ 감회가 새로웠다. 그동안 '내가 블랙벨트를 받을 수 있을까'라는 상상만 했다. 승급하기까지의 시간이 길었는데, 허리에 벨트가 둘러지는 순간 세상을 얻은 듯한 기분이었다. 지나온 힘든 세월이 잊혀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부담도 많고 책임감도 느껴진다.

- 오시말 코스타에게 블랙벨트를 받았다. 그와는 어떻게 인연을 맺었나?
▲ 과거 팀맥스 시절 알게 됐다. 당시 난 퍼플벨트였는데, 1개월간 함께 훈련하며 친해졌다. 이후 좋은 인간관계를 쌓아가다가 브라운벨트 때 다시 초청해 3개월간 배웠다. 블랙벨트를 받을 때에도 한 달간 한국에 머물며 주짓수를 가르쳐주셨다.

- 본인보다 나이가 어리다. 인간적으로 어떤 사람인가?
▲ 매우 성실하고 착하며 주짓수를 깊이 있게 가르쳐주려고 노력하신다. 훌륭한 스승이다. 현재는 브라질에서 자신의 이름을 딴 OCS짐을 운영하고 있다. 크리스티아노 마르셀로의 직계제자로 주짓수를 수련한지 20년이 넘었으며, 블랙벨트 반열에 오른 지 10년 가까이 됐다고 들었다.

- 오시말이 가장 강조하는 부분은?
▲ 성실함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또한 벨트 색깔, 나이에 관계없이 지속적으로 경기에 나가야 한다고 늘 강조하신다. 나와 마음이 잘 통한다. 내년에 다시 모실 생각이며 나 역시 브라질에 갈 계획이 있다.

- 최근 경기에 많이 나가는 것이 그 때문인가?
▲ 꼭 그렇진 않다. 다른 블랙벨트들의 실력이 궁금했다. 또한 제자들에게 본이 되고 싶은 마음도 있다. 40세가 넘어서도 충분히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더 늦기 전에 계속 도전하고 싶은 것이다. 경기를 통해 제자들을 지도하는 방법을 배운다. 또한 남은 인생을 주짓수에 전념하겠다는 스스로의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경기 출전은 나태함에서 벗어나고 마음을 다지는 계기가 된다. 요즘은 한국 주짓수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생각하며, 머지않았다는 희망도 느낀다.

- 인상깊었던 경기가 있다면?
▲ 작년 12월 중국 대회였다. 아부다비 주짓수 중국 선발전에 어덜트로 출전했는데, 탈이 나서 무척이나 고생을 했다. 경기 전날 향식료가 많이 들어간 음식을 먹은 게 화근이었다. 새벽까지 설사를 했다. 탈진된 상태였고, 여전히 배가 꼬이는 것 같아 경기포기 신청을 했다. 마음을 놓고 느즈막히 경기장을 갔는데, 내 이름이 명단에 포함되어 있는 게 아닌가. 얼떨결에 매트에 올랐으나 2분이 지나자 온몸에 힘이 빠져 제대로 싸울 수 없었다. 다음 날 분해서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외국 대회에 나갈 때는 항상 음식을 조심해야 한다. 이 부분은 선수들에게 강조하고 싶다.

- 제자에게 블랙벨트를 주는 것도 매우 의미있을 것 같다.
▲ 아직은 블랙벨트를 수여할 수 없다. 2단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단을 획득하는 과정에서 제자들이 승급할 수 있는 여건이 된다면 좋을 것 같다. 또한 제자들이 지부를 내서 모두가 잘 됐으면 좋겠다. 그것이 국내 주짓수가 번창하는 길일 것이다.

- 아부다비 주짓수의 전무다. 임무가 무엇인가?
▲ 후원사업과 매체 노출, 사업확장 등 단체가 원활히 돌아기기 위한 기능적인 것들을 주로 맡고 있다. 올코리아와 연합회를 함께 발전시킬 수 있는 방향을 모색중이다.

- 지난해에 아부다비 주짓수를 도입해 처음으로 선발전을 치렀다. 개인적으로 어떻게 평가하나?
▲ 매우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한다. 아직 한국에 주짓수가 도입된 것을 모르는 나라가 많은데, 한국에도 대회가 열리고 수준 역시 높다는 것을 알렸다는 것에 큰 의미가 있다. 선수들 수준이 높다는 말을 들었고, 현지 생중계가 원활했던 것에 대해서도 호평을 받았다.

- 혹시 주짓수를 배우고 있는 세대들에게 할말이 있다면?
▲ 주짓수는 깊이가 있는 운동이다. 단기간에 기술만 배운다는 마음은 바람직하지 않다. 기술만 빨리 배우다보면 꺾일 수 있다. 꾸준함과 인성, 단단한 마음가짐 중요하다. 그래야 올바른 주짓떼로로 성장할 수 있다.

- 블랙벨트 보유자, 지도자, 협회를 이끌고 있는 임원으로서 한 마디 부탁한다.
▲ 일단 모든 주짓수 지도자들이 주짓수를 통해 성공했으면 좋겠다. 지금 단체를 훌륭히 키워 나중에 후배들에게 후회없이 물려주고 싶다. 내가 맡은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국내 주짓수를 위한 길이라고 생각한다. 국내 주짓수는 지금이 발전하기 좋은 시기다. 특히 월드 프로페셔널 주짓수가 도입돼 한국 주짓수를 세계에 알릴 기회가 생겼다. 사명감을 갖고 노력하겠다.

[관련기사]
☞블루드래곤 김진철 '주짓수라서 행복해요'
☞김진철-최규환, 힉슨컵 주짓수 우승
☞아부다비 주짓수 김진철 "지금이 본선진출 기회"
☞김진철, 주짓수 블랙벨트 승급 "시작은 지금부터"
☞김진철, 미국 주짓수 대회서 동메달 획득
 
 
[믿을 수 있는 격투기 뉴스, 신세기 격투스포츠의 길라잡이]
고준일 기자 (junil.ko@gmail.com)
기사등록 : 2011년 04월 02일11시 40분 26초